한 3년 정도? 완전 명품에 빠져서 지냈던 적이 있다.
하필 빠져도 제일 비싼 브랜드라 하는 에르메스에 빠져서 소위 매장에서 히스토리가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가장 고가의 가방을 받을 정도로 의류, 슈즈, 악세서리, 스카프, 테이블웨어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싹쓰리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매장에서 가방을 받기 위해서는 에르메스에서 판매하는 비주류 제품도 구매하는 것이 보통이다. 나야 에르메스 그릇까지 좋아하는 바람에 개의치 않았지만 가방만을 바라는 사람들은 매장에서 내가 바라는 가방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내 돈 주고 사는데 왜 가방을 안주나요 하는 곳이 바로 에르메스다. 수요와 공급의 공식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위에 문장에서 보면 가방을 받는다고 썼는데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라 공을 들여야 그 가방을 받을 수 있어서 그리 썼다. 물론 그 공이라 하면 내가 원치 않아도 고가의 주얼리나 비주류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매장의 셀러들에게 잘보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주변에 원하는 물건만 딱딱 골라서 사면서 가방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방을 무료로 받는 것도 아닌데 내 돈 주고 사도 받는다는 표현을 한다. 이해하시라. 그 세계는 그러하다. 심지어 가방을 받는 날, 또다른 소비로 감사함을 표현한다.
스트레스성 충동적인 소비였던 것 같다. 아이들 키우며 받는 어려움이나 살며 느끼는 스트레스를 소비로 풀며 꽤나 많은 돈을 썼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소비를 지속하면서도 내가 갖고 싶었던 무언가를 하나 사도 처음에만 기쁠 뿐 며칠 지나면 그 만족감이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러곤 또다른 무언가, 내 헛헛한 마음을 채워줄 걸 찾는 반복이었다.
명품을 사는 게 문제라는 의도로 쓰는 글은 아니다. 나 또한 아직 많은 명품을 소유하고 있다. 단, 소비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이 바뀌면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를 적어두는 것이다.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참으로 많은 소비를 했다. 그런데 그런 명품 쇼핑을 반복하면서 이제 더 이상 갖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사라질 무렵, 이런 보복성 소비를 도대체 왜 했나는 반성을 하게 됐다. 나에게 남은 건 옷장을 가득 채울 정도의 각종 명품 브랜드의 가방, 옷, 신발들이었다(가방은 에르메스, 샤넬이 가장 많고 옷은 구찌와 에르메스, 신발은 구찌, 에르메스, 샤넬이 주를 이뤘다). 가지고 싶어서 돈을 모아 하나씩 모아가는 재미로 산 게 아니라 닥치는 대로 마구잡이식 쇼핑이었으니, 흥미가 떨어지자 소유욕도 훅하고 떨어져 버렸다.
가지고 있는 그 자체가 싫었다. 심지어 국내에 두개밖에 없는, 에르메스의 리미티드 에디션 백도 나에게 불필요하고 짐처럼 느껴졌고 옷장을 싹 비우고 싶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얘는 안돼'를 외치며 뺀 샤넬백도 있긴 하다 ㅎㅎ 정말 아끼는 것과 남편에게 선물받은 몇 가지, 손에 꼽는 물건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정리했다. 원채 고가의 물건이다보니 처분용으로 저렴하게 팔아버렸는데도 돈이 제법 됐다. 그러니 얼마나 많이 사댔던 건가....
그리고 나서 산 것이 바로 주식이었다. 명품 팔아 주식 쇼핑이라니.
아직도 내 주변에서는 요즘 뭐 사냐고 물어본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냥 웃어버리고 만다.
가방 팔아 생긴 돈으로 사놓은 주식들이 그 희귀템 가방을 두어 개 이상 살 수 있을 정도로 불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방을 받은 날보다 더 기쁘더라 ㅎㅎ 소비로 끝나버리는 게 아니라 또다른 가치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오랜만에 흐뭇했다. 그러니 더더욱 소비로 끝나버리는 일을 줄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명품에 관심이 없다. 코로나 이후로 백화점에도 가지 않고 유럽 구매대행전문업체로부터 주문해서 받는 명품들도 누구의 부탁을 대신하는 경우 아니면 없어졌다. 사람이 한번 생각을 바꾸니 이렇게 큰 변화가 생겼다.
아주 친한 지인들에게만 에르메스 가방을 모두 처분했고 그 돈으로 주식을 샀다고 말했는데 모두가 놀랐다. 그 가방들을 무척 애지중지했다는 걸 알아서 그랬는지, 확 바꿔버린 모습에 놀란건지 아무튼 나는 요즘 아주 평범한 누가 보면 명품에 아예 관심조차 없었던 사람처럼 살고 있다.
그리고 내가 끊은 것 중 하나가 스타벅스. 누가 기프티콘 보내주기 전까지는, 약속으로 어쩔 수 없이 가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스타벅스와 3분 거리에 살면서도 안간다. 스타벅스도 안가고 개인카페도 가지 않는다. 내가 본래 스타벅스를 주 3회~5회 이상 다녔던 걸 주변에서도 아는데, 스벅 파트너들과 개인적인 농담을 할 정도로 친했는데 안간지 2년 가까이 되어가는 듯 하다. 스타벅스는 안가지만 딸 아이에게 스타벅스 주식은 사주었다.
지금은 아메라키노를 주로 마시지만 예전에는 스페셜한 커피를 더 자주 마셨으니 일반 커피보다 잔당 1500~2000원 이상 비쌌고 그게 주 3회, 4회를 넘겼으며, 거기에 커피만 마시는 것도 아니고 케이크나 타르트 하나 곁들이면 대충 계산만 해봐도 최소 20만원에서 최대 30만원인 것. 존 리 대표님 말씀처럼 커피값만 아껴도.. 라는 말이 새삼 생각난다.
커피를 무척 좋아해서 매일 2잔은 마시는 편이지만 이젠 집에서 마신다. 성능이 꽤나 좋은 이탈리아 커피머신이 집에 있고 내가 선호하는 향과 맛의 원두를 갓 갈아서 마시니 동네 카페 커피보다는 훨씬 고급이다. 지인들도 와서 마셔보고는 맛이 좋다고들 하는데, 굳이 이런 커피를 놔두고 밖에 나가서 커피를 마실 필요가 없어졌다. 심지어 우리집 커피머신의 라떼도 정말 맛있다.
소소한 것도 모이면 큰 것이 된다. 스타벅스에 다니면서 쓰던 커피비, 지역 특성상 뷰가 멋진 카페가 많아 지인들과 남편과 기분전환을 핑계로 다니며 썼던 그 많은 커피값을 계산해보니 적금을 하나 넣어도 될 만큼의 돈이 되더라.
요즘은 아이들이 커서 읽지 않는 전집이나 아직 처분하지 못한 명품들도 조금씩 중고로 내놓고 있다. 파는 물건의 가치보다는 이걸 팔고나서 생기는 수익으로 할 수 있는 일, 가령 주식을 한주씩이라도 더 사주는 그런 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이젠 생존을 위해서라도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접근성으로 따지면 부동산보다는 주식이라는 점, 그리고 단기적인 시세 차익보다는 내 아이가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어도 살아있을 좋은 회사의 주식을 지금부터 차곡차곡 모아가는 것이 결국에는 가장 큰 수익이 되어 돌아온다는 걸 다시금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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